2  |  목사관 앞에서가난하고 외로웠던 화가

가이드가 목사관 담장 앞에 우리를 세웠습니다.

빈센트의 아버지 테오도루스 반 고흐가 살던 집입니다. 지금은 교회 공동체 소유인데, 현직 여성 목사가 실제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집 옆에 작은 세탁실 건물이 있었는데, 그게 빈센트의 스튜디오로 쓰였던 곳이었습니다.

 

"창문은 원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만들어 줄까 제안했는데, 빈센트가 필요 없다고 했어요. 밖에서 그릴 거라고요."

그래서 그는 밖에서 그렸습니다. 들판에서, 밭에서, 뉘넌의 공기 속에서. 스스로를 '농부의 화가'라고 불렀던 이유가 그것이었습니다.

 

<고흐 살던 집 뒤 근처 연못, 시가 재개발 하려는 것을 고흐 손자 일명 "엔지니어"가 막았다고 합니다.>

자화상을 37점이나 그린 이유

자화상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37점이나 되는 자화상. 누군가 허영심 때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아니요. 가난 때문입니다."

모델을 고용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빈센트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울 앞에 섰습니다. 우리가 그의 얼굴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사실 그의 가난 덕분이기도 합니다.

거울에 반전된 상이다 보니 자화상에서는 오른쪽 귀처럼 보이는 게 실제로는 왼쪽 귀라는 것도, 이 맥락에서 설명이 됐습니다.

 

테오와의 관계고용주와 피고용인

저는 그동안 테오를 그냥 헌신적인 동생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근데 가이드는 좀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였습니다."

매달 150프랑을 보내면, 빈센트는 그림과 스케치를 보냅니다. 꽤 철저한 규칙이었습니다. 빈센트는 편지에서 언제 돈을 보내줄 거냐고 독촉하기도 했습니다. 150프랑은 당시 초등학교 교사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형을 위해 자기 월급을 통째로 보낸 셈입니다.

 

이것을 보면 네덜란드에서 12년간 산 저에게 정말 두 형제는 정말 네덜란드인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생이 형에게 돈을 주고 형은 착실하게 그림을 그려서 우체국을 통해 파리에 있는 동생 테오에게 꼬박꼬박 보냅니다. 

 

뉘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우체부

편지는 우체부 아저씨가 개 마차에 싣고 2km 떨어진 역까지 날랐습니다. 하루에 두 번. 기차로 파리까지 이틀이면 닿았습니다. 그러면 테오의 답장이랑 돈이 왔습니다. 편도 이틀, 왕복 나흘.

"뉘넌에서 빈센트가 가장 자주 만난 중요한 인물이 우체부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습니다. 돈도 이 사람 손을 거쳐 왔고, 그림도 이 사람이 날랐고, 편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 고흐의 예술 활동 전체가 이 우체부 아저씨의 마차 위에 실려 있었던 겁니다.

 

2년 동안 135통의 편지. 그 편지들에는 스케치가 함께 들어 있는 것도 많았습니다. 나중에 일부는 수십만 달러에 팔렸다고 합니다.

 

편지를 지킨 사람요한나 봉어르

네덜란드 사람들은 책읽기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고 또 보관도 잘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간의 편지도 수십년 보관하는 지인들이 꽤 있습니다. 테오 아내를 보면 또 참 네덜란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빈센트는 테오에게서 받은 편지들을 잘 보관하지 않았습니다. 난롯불에 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테오의 아내 요한나 봉어르는 달랐습니다. 빈센트의 편지를 전부 보관하고, 나중에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영어 교사였던 그녀 덕분에 우리가 반 고흐의 삶을 이렇게 생생하게 알 수 있게 된 겁니다.

가이드가 요한나의 사진 앞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그녀가 없었다면, 우리는 반 고흐를 지금처럼 알지 못했을 겁니다."

반고흐 뒤에는 언제나 그 이야기를 지킨 사람이 있었고 그 요한나 봉어르로 인해 램브란트나 그 다른 화가들 보다 빈센트는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는 것 같고 더 큰 감명을 줍니다.

 

- 감자 먹는 사람들 동상 식탁 밑에 고양이 있는 것 아시나요? 

  사람들이 열심히 만져서 귀가 황동색!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림 아래에 고양이가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다는 상상을 하면 재미있습니다.

→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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